낙서 10

하이에나의 시간

60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분이 기차역 대합실에 앉아있다. 대합실 TV에는 '동물의 왕국'이 나오고 있다. 사자가 영양 떼를 이리저리 쫒아다니다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마리의 목덜미를 물고 숨통을 끊고 있다. 사자에게 물린 영양은 고통스러워하며 다리를 허우적 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진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하이에나 떼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띠리링~전광판에는 예약한 기차가 곧 도착한다는 알림이 나온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 플랫폼으로 한발 두발 천천히 걸어나갔다. 기차가 출발하고 창밖으로는 서울의 높은 빌딩들과 자동차들 그리고 한강철교등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간다. 기차는 이내 도시를 벗어나고 창밖으로는 너른 들판과 띄엄띄엄 집들이 보인다.

낙서 2021.11.30

10억 할아버지 4편 (다시 나타나신 할아버지)

여름의 뜨거운 더위속에 그 할아버지의 기억이 잊혀저 갈 무렵, 그 분이 다시 나타나셨다. 마지막으로 본 후, 한 달 반 정도 지난 어느날 이었던 것 같다. 볼 일이 있어 평소 아는 사장님 가게에 들렀는데, 그곳에 바로 그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것이 아닌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우리는 서로를 바라 보았고 이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사장님께 얘기를 들었는데, 할아버지는 근처에 맘에드는 집을 찾으셔서 다음주에 계약하신다고 했단다. 그런데 새로 사시기로 한 집의 주인은 3달 정도 뒤에 집을 비워주고 나갈 수 있고 그 할아버지는 지금 사시는 곳을 1주일 내에 비워주셔야 한단다. 그래서 지금은 3달 정도 단기 거주할 저렴한 방을 찾고 계시단다. 사징님과 함께 여러 매물을 고르고 그 중에서 단기거주 가능한 물건을..

낙서 2021.10.02

10억 할아버지 3편

그후로도 할아버지는 종종 들러서 괜찮은 집 나온거 있냐고 물어 보시고, 여러 집들을 둘러 보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할아버지는 이 동네 저 동네 그리고 길 건너 동네 다 돌아다니면서 수 많은 집들을 보셨다고 한다. 물론 옥상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세 달여 동안 샅샅이 온 동네 집들을 다 둘러보셨지만, 할아버지는 결국 집을 사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날 여름이 시작할 때 쯤 종적을 감추었고 그 이후로 동네에서 그 분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낙서 2021.09.29

10억 할아버지 2편

잠시 외출중이었던 그때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나이드신 남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가게 앞에 왔는데, 문이 잠겨있네. 그 할아버지다. 지난 번에 다시 오겠다고 말을 남기며 떠나신 바로 그 분이다. 근처에 있어요. 곧 갈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뒤에 가게 앞에 도착해보니, 그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할머니와 함께 오셨다. 우리는 함께 옥상이 있는 집을 찾고 또 찾았다. 이번에도, 두 집 정도의 후보를 뽑았고 같이 보러 문을 나섰다. 할머니는 무릎 관절이 안 좋은셔서 그런지 걸음걸이가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할머님을 위해,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두 집을 둘러보았고, 역시나 마음에 드는 집을 찾 을 수 없었다. 한 집은 ..

낙서 2021.09.20

10억 할아버지 1편

점심 후, 찾아온 식곤증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다. 그때, 깔끔한 옷차림의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다. 그 분의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왼쪽 가르마를 타서 빗어 넘겨져 있었다. 집 사려고 하는데, 옥상이 있어야 해. 그동안 아파트에 살았는데, 이제는 팔고 주택으로 이사하려고. 옥상에 조그마한 텃밭 만들어서 꽃도 심고 상추도 심으려고. 할아버지가 원하는 집을 고르고 골라서 두 집 정도를 후보로 뽑아 보았다. 우리 둘은 문을 나서서 집을 보러 나갔다. 첫 번째 집은 옥상이 넓고 좋았다. 그 집 주인은 거기에 화초와 야채등을 가꾸고 있었다. 옥상은 맘에 들었다. 그러나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좁고 가파랐다. 그래서 이 집은 땡. 두 번째 집은 옥상으로 가는 계단도 양호하고 옥상도 깔끔했..

낙서 2021.09.19

왜 내 얘기를 해!

버스타고 가는중에 있었던 일이다. 대부분 스마트폰 보거나 창 밖을 보고있었다. 버스안의 그 정적을 깨고 누군가가 화가난 목소리로 "왜 내 얘기를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앞서 말했듯이, 버스안은 조용했으며 말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또 다시 "왜 내 얘기를 하냐고~!"라며 화가 가득찬 목소리가 버스안에 울려 퍼졌다. 버스 승객들은 누가 소리 지르는지 확인해 보려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나 역시도 누가 소리를 지르는건지 확인해보려고 둘러봤으나, 다들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누구인지 찾기가 힘들었다. 다만, 저 사람인 것 같다는 심증은 있었다. 눈으로는 소리 지른 사람을 찾으면서. 머리 로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도 안했는데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하나 아니면 계속 타고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낙서 2021.09.09

판다 아저씨와 안판다 아주머니

가게 문이 열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신사분이 들어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안녕하세요.' '여기에 앉으세요.'라고 안내를 하고나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기, 집을 내 놓으려고 하는데... 아, 네~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하면서) 주소가 어떻게 되시나요? oo동 oo번지 주택이요. 저기 위쪽 파란색 대문 2층집 맞으시죠? 금액은 대략 어느정도 생각하세요? oo 정도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번호 남겨 주시면, 찾는 손님 오시면 연락드리고 방문하겠습니다. (1주일 뒤 전화로) 사장님, oo부동산입니다. 집을 보시고자 하는 손님이 계셔서요, 댁에 계시나요? 제가 외출중이라서요. 네, 그러면 손님 모시고 집 외부만 먼저 보고 오겠습니다. 손님과 집 외부를 보고나서 열려져있는 대문 틈으로 안쪽을 보고 있..

낙서 2021.09.07

확정일자는 어디에서

사무실 문이 열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분이 걸어들어 오신다. 얼굴에는 약간의 근심과 손에는 전세 계약서를 가지고서... 전세 계약서를 펼치고나서 혹시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신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지 말씀해 보세요"라고 했더니, 계약서에 확정일자 도장이 필요하단다. 가져오신 예전 계약서에는 확정일자가 있었으나, 최근 집주인 변경되어 집 주인분과 직접 작성하신 계약서에는 확정일자가 아직 없었다. 이번에 집 주인 변경되기 전까지는 오랜기간동안 묵시적 갱신으로 자동 연장되어서 계약서 작성이나 확정일자를 받을 일이 없어서, 어디에서 확정일자를 받아야 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할머님, "거주하시는 곳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가시면 확정일자 받으실 수 있어요"라고 말씀 드렸다.

낙서 2021.08.23

마음 급하셨던 손님 A

아마 두 달 전에 있었던 일인 것 같다. A 손님이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의자에 앉지도 않으시고 바로 빌라 매물 나온것이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물어보신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라고 말씀드리고 매물 검색을 찬찬히 시작했다. 적합한 물건 서너개를 찾아서 대략적인 위치와 가격을 알려드렸다. 그리고나서 구입하려는 이유를 여쭈어보니, 전세로 살고 계시는데 요즘 매매나 전세 가격이 많이 오르는 것 같아서 급한 마음에 알아보러 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얘기하시길, 남편분께서는 손님분과는 반대로 좀 더 전세로 살면서 집 마련은 나중에 알아보자고 하셨단다.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나서 부족하지만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첫째, 매수냐 전세냐에 대해서 먼저 남편분과 의견 일치를 먼저하셔야 합니다. 둘째, 계약..

낙서 2021.08.23

손님인가 아닌가

1. 광고 전단지 돌리는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하려는 그 찰나에, 전단지 몇 장을 테이블에 잽싸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유유히 뒤 돌아 나간다. 목에서 안녕하...까지 나오다가 다시 들어간다. 전단지 내용은 번호키로 교체하라는 내용이다. 2. 복조리 학생 음력 설 전쯤이었던 것 같다. 복조리를 한 바구니 담아서 돌아다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하면서, 학생인데 복조리 판매 알바를 하고 있다고 하나만 팔아달라고 한다. 팔아드리고 싶다. 하지만... 몇 달째 개시도 못하고 있어 수중에 돈이 없다. 미안하지만 다음 기회에~ 암턴 그 학생분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바래본다. 3. 문득 회사다닐때 퇴근하면서 길에서 만났던 분이 생각난다. 지방어디에서 서울 올라왔다가 차비가 떨어..

낙서 2021.08.23
반응형